[경찰팀 리포트] '꾼'들 수법 진화하는데… 문화재 도굴범죄 추적은 '감으로'

입력 2018-03-09 18:27  

전문가 뺨치는 해저 탐사…SNS로 장물 거래

문화재 도굴범죄 갈수록 늘고
선장·자금책·다이버 등 역할 분담
카톡·문자로 문화재 사진 확인 후
은밀한 장소서 거래…단속 어려움

경찰 단속은 제자리 걸음
범죄 네트워크 파악이 중요한데
정보력 부재에 인력마저 태부족
공소시효 연장 등 법 개정도 시급



[ 장현주 기자 ]
“하마터면 고려청자 등 소중한 문화재가 장물로 사라질 뻔했죠.”

지난해 1월 문화재청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문화재 도굴 일당을 검거하고 고려 후기 청자접시 등 85점의 문화재를 회수했다. 이들은 충남 태안군 남면 당포구 부근 해저에 잠겨 있던 문화재를 노렸다. 이곳은 유속이 빠른 좁은 해역으로 고려·조선시대 해난 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곳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고려청자 등 값어치 있는 문화재를 다수 건져냈고 일부를 유통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도굴 위치를 중심으로 국립해양연구소와 탐색에 나섰다. 2주간 조사 끝에 20여 점의 문화재를 추가로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낱 도굴꾼들이 어떻게 이런 (문화재가 다수 잠겨 있던) 곳을 찾아낼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진화하는 문화재 범죄

9일 경찰청에 따르면 문화재 관련 법 위반(문화재보호법,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건수는 지난해 90건으로 전년보다 7%가량 늘었다. 회수율은 더욱 심각하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문화재 2149점이 도난됐지만 회수 실적은 35%인 762점에 그쳤다. 문화재 범죄를 담당했던 한 경찰관은 “도굴, 불법거래 등 문화재 범죄가 계속 발생하는데 관련 수사는 단서 부족으로 거의 손을 놓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 발생하는 문화재 범죄는 ‘팀’ 단위로 철저한 분업하에 움직이는 게 특징이다. 태안 다이버 일당도 선장, 다이버, 다이버 보조인원, 자금책 등으로 역할이 철저하게 구분됐다. 팀 구성은 문화재 유통 과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판매책, 보관책, 행동책, 자금책 등 분야별로 나눠 움직인다. 불상 등 일부 문화재는 거래금액이 수십억원에 달해 팀을 조직해 전문적으로 문화재 범죄를 처리하는 셈이다.

거래 방식은 은밀하게 음지로 파고들었다. 과거에는 서울 인사동 등 주요 거점에서 만나 거래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를 통해 문화재 사진을 먼저 주고받는 방식이 등장했다. 이후 서로 이해관계가 맞으면 커피숍 등에서 만나 몰래 거래가 이뤄진다. 박병호 문화재 전담수사관은 “불법 거래업자들은 사진만 봐도 예상 매매가나 진품 여부 등을 바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라며 “거래가 더욱 음지로 들어가 검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국외 소재 문화재는 20개국 16만8000여 점. 그러나 전담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국외 반출 문화재 환수 실적은 지난 4년 동안 총 5건에 그쳤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관은 “문화재 밀반출은 물론 일부 도굴범은 한국 문화재가 많은 일본 중국으로 나가 문화재를 훔쳐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전문 수사 인력은 태부족

반면 문화재 범죄 단속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 범죄 수사의 핵심은 도굴꾼, 매매업자 등 불법 거래업자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것이다. 대부분 수사가 역추적 방식으로 이뤄지기에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진술이 가장 중요하다. 오랜 기간 문화재 범죄를 전담해 정보원을 확보하고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수사 자체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태안 다이버 일당도 금전적인 문제로 다툼을 벌인 한 내부 조직원을 문화재청과 서울경찰청이 적극 설득한 게 주효했다.

지난해 국보급 문화재인 동의보감 초간본, 대명률(사진) 등 문화재 3800점을 회수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조폭3팀은 5명의 인원이 2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절도범을 만났다. 이들은 공소시효가 지난 절도범과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대접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결정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경찰청은 2015년부터 문화재 전문수사관을 뽑아 40여 명을 각 지방경찰청에 배치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전통문화교육원에 전문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수사관 교육도 하고 있다. 그러나 보직 순환식으로 운영되는 경찰이 문화재를 다루는 전문성이나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기 어려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다.

문화재청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문화재청에 소속된 사범단속관은 특별사법경찰로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지만 단 3명의 인원이 전국을 커버한다. 한 사범단속관은 “10년이 넘는 기간에 3명으로 운영돼 왔다”며 “이 정도 성과를 낸 것만도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미비한 법·제도도 고쳐야”

전문가들은 공소시효 연장 등 법적인 제도 정비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 절도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이 때문에 문화재를 장기간 은닉한 뒤 공소시효가 지나면 유통하는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공소시효 연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지만 그때마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국회에서도 도굴범에 대한 공소시효 기간을 10년에서 20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여전히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선의 취득 조항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굴꾼들이 문화재를 거래한 뒤 도난 사실을 몰랐다며 선의 취득을 주장해 법망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조선 후기 암행어사 박문수의 간찰(서신) 1000여 점을 숨기고 있다가 경찰에 붙잡힌 김모씨(65)도 “장물인 줄 몰랐다”며 “또 다른 매매업자에게서 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도난범이 선의 취득을 주장해 다양한 입증자료를 준비한다”며 “선의 취득 판단이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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